뜬 눈 도로 감기

2009. 1. 6. 13:34사색의 향기


서 화담(徐花潭, 화담은 徐敬德의 호) 선생이
길가에서 우는 사람을 보고 이유를 물었다.
"저는 다섯 살 때 눈이 멀어서 지금 20년이나 되었답니다.
오늘 아침나절에 밖으로 나왔다가
홀연 천지만물이 맑고 밝게 보이기에
기쁜 나머지 집으로 돌아가려 하니 길은 여러 갈래요,
대문들이 서로 어슷비슷 같아
저희 집을 찾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 지금 울고 있습지요."

선생은,
"네게 집에 돌아가는 방법을 깨우쳐주겠다.
도로 눈을 감아라.
그러면 곧 너의 집이 있을 것이다."
라고 일러주었다.

그래서 소경은 다시 눈을 감고 지팡이를 두드리며
익은 걸음걸이로 걸어서 곧장 집에 돌아갔다.

- 연암 박지원의 산문 중 -

'사색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다리는 인생  (1) 2009.01.15
소금장수의 백상루 구경  (0) 2009.01.13
도망치거나...  (1) 2008.12.16
가슴으로 낳은 아이  (1) 2008.12.12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1) 2008.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