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그 씁쓸함...

2009. 5. 15. 08:35Small-talk



 어제 친구들과 모임으로 11시 가까이 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시간에 와이프가 뭘 열심히 적고 있다.
며칠 전에 중간고사가 끝났기 때문에 답안지  채점하는 줄 알았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건 답안지가 아니라
리본 곱게 달린 예쁘장한 카드였다.
 카드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지연이가 오빠도 한 장 쓰란다. 피식 바람빠지는 웃음을 지어보
이곤 내가 그런 거 쓸 위인이냐 묻듯 그렇게 난 샤워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교실에 올라 가야 할 시간...  >----

 작년과 재작년 스승의 날에 난 학급에 올라가지 않았다. 풍선과 폭죽, 눈 스프레이, 칠판 빼곡히 적어 놓은 축하 낙서들...
교직 경력이 15년이 되어가는데도  아직도 난 그런 분위기가 어색하고 쑥스럽기만하다. 그리고 교탁 가득 쌓아 놓은
아이들이 가져온 선물들도 부담스럽고, 또 그걸 내가 다 안고 가져 내려오는 것도 쫌 그래서이다.
 
 그런데 작년 아이들은 재작년과는 다르게 담임인 내가 교실에 안올라온 것을 많이 서운해하며 스승의 날 이후로 나와
반 아이들과의 관계가 좀 서먹서먹해지기가지 했었다. 미안한 마음에 담임인 내가 왜 그렇게 행동을 했는지 그 이유를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싶었는데 그걸 내 입으로 얘기하는 것조차 내 마음과는 다르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결국 말을 못했다. 이후로 몇 일이 지나고 나서야 몇 몇 아이들과의 사석의 대화속에 잠간 그 변명을 섞었던 기억이 있다.

 이런 이유로 올 해는 교실에 올라가야하나 말아야하나를 잠시 고민했는데 가만보니 올 해는 작년과 다르게 정상 수업을
하기 때문(작년에는 수업 없이 행사만 했다)에 교실에 올라 가야만 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교무실 문을 열고
막 나가는데 우리 반 아이들 몇 몇이 내 마중을 나와 있다.  순간 '이놈들 뭐 또 준비하느라 선생님 늦게 올라오게 하기
위한 첨병쯤 되나보다' 싶었다. 그런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건데...  이 아이들이 가까운 길을
놔두고 옆으로 돌아가잖다. '엉? 이놈들 왜그러지?'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올라가면서 자꾸 내가 캐묻자 아이들은 곧
사실을 내게 말한다.  
 이유인 즉은...  우리 옆 반 16반이 너무 너무 이쁘게 해 놓아서 내가 그걸 보면 우리 반이 너무 초라하게 보이기 때문에
실망하실까봐 그렇단다. ㅎㅎㅎ
귀여운 놈들...  '니들 믿길지 모르겠지만 사실 샘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편안한 걸 좋아한다'고 얘기를 했지만 아이들
마음은 또 안그런가보다.
 내 기꺼이 옆으로 돌아가고 나갈때도 반대로 나가겠다고 얘기하니 아이들이 한숨을 돌린다. ^^

-----<교실 얘기는 여기서 잠시 멈추고...>---- 

 샤워를 마치고 거실로 나왔는데 지연이가 애기 담임선생님 얘기를 한다. 난 그 얘기를 듣고 '혹시나~' 했던 마음이
'역시나~'가 되어 버렸다.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한 얘기는 '내일 선물 가져와도 된다~'라는 말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한테 말이다. 
 중학교에서는 몇 년 전만하더라도 스승의 날 전에 '선물 가져오면 안된다'라고 말하신 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말 순수하게 했던 말인데 어느 날인가 부터 그 말을 곡해해 해석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결국 지금은 그 말이
간접저긍로 학부모들에게는 선물을 바라는 말처럼 되어버린다고 해서 그런 말 조차 하는 선생님도 드문 실정인데... 어떻게
아이들에게 대놓고 선물 가져와도 된다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초등학교의 심각한 행태(안그러신 분이 계시겠지만 그런신
분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를 친구 와이프나 동료 교사의 체험 수기로 익히 들어 왔었지만, 아이 담임 배정 받고 주위
소문과 와이프의 첫 인상과 이후 만나면서 갖게 된 느낌 등으로 참 좋으신 분이라고 생각했던 아이 담임선생님이었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니 한 숨만 나오고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와이프는 아이의 그런 소리를 듣고 그 길로 백화점 가서
선물을 사 왔다고 한다.
 중학교에서 대놓고 뭘 달란다거나 하는 식으로 얘기하는 교사는 내가 아는 사람중에는 없고 그런 소문도 들은 적이 없다.
물론 아무도 모르게 한다면 모르겠지만 결국 어느 순간에는 우리(교사)끼리 하는 얘기 중에는 소문이 날 수 밖에 없는 일이
라고 생각하기에...
  그런데  초등학교는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느낌이 지워지질 않는다.  중학교가 촌지, 선물로 부터 완벽히 깨끗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초등학교와 너무 차이가 난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걸까? 마음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다.

 어떻게 학부모들에게 대 놓고 뭘 바랄 수 있는건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창피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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