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큼의 시간이 흐르면...

2014. 5. 15. 10:56Small-talk

벌써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건만, 아직도 5월 15일이 되면 어색하고 쑥스럽고 당황스럽다.

교실로 올라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약간의 불규칙적인 호흡에 계단 끝에 서서 긴 숨을 몇 차례 뱉어본다.

 

예전보다 형식적인 면에서 상당히 간소화된 요즘,  '스승의 날'이라는 의미도...   점차 내가 원하던 방향(?)으로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그 잔향이 남아 있어서 예전의 느낌을 문득문득 받고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가보다~  생각한다.

 

오늘 우리 반의 풍경은...    부회장 채원이와 지현이가 교무실을 나서는 나를 좀 어색한 이유로 막아서서는

'선생님 지금 올라가시면 안됩니다~'라고  외치는듯 그렇게 작전을 펼치고 있었고 

잠시 시간을 지체하고 올라간 교실...    탁자 위에  몽쉘통통과 카스타드로 쌓은 간이 케익?에

예진이가 초를 꽂고는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있었다.   칠판 가득 하트와 사랑하다는 글귀들이 정신없이

씌여져 있었고 한 쪽에는 곰과 곰 같은 모양은 한 내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촛불을 끄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에 서둘러 후~~~~!!    아이들의 박수와 탄성, 그리고 스승의 날을  

축하드린다는 멘트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  어색하다. 일단 고맙다는 말을 먼저 던지고는 이런 저런 애기를 분위기 전환용으로 내뱉었는데...

분위기가 썰렁하다. 보아하니 케익과 낙서는 몇몇 여자아이들에 의해 계획된 것으로 대부분의 아이들은

'뭐 저런걸 ~' 하는 표정과 '오늘이 스승의 날이었군' 하는 표정이라는...   부회장 채원이도 오늘 학교에 와서

스승의 날임을 알았다고 한다. 

대충 쌓여 있는 케익들의 조각을 세어보니 35개가 안되어서 원하지 않는 친구들은 안먹어도 된다고 하며 1분단부터

아이들에게 케익을 돌린 후 전년도 담임선생님들과 초등학교때 선생님들 중 생각나는 분이 계시면 꼭 찾아뵈라고 하고

서둘러 교실을 뛰쳐나오듯 나와서는 복도 시작되는 부분에서 한 숨 깊이 몰아쉬면서 ,

어제 종례 때, 오늘 단축수업한다는 말을 했는데 왜 단축수업을 하지? 하는 아이들의 반응도 그렇고...

오늘 아침 뒤늦게 스승의 날임을 깨닳은 아이들이 급하게 준비하느라 시간이 부족했던 모습들도 그렇고...

곧 머지 않아 스승의 날이 평소의 이상과 같아지는 날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3층 계단을 5분 동안 내려왔다.

 

하루 빨리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별도의 스승의 날이라는 건 선생님과  학생, 그들의 기억속에서 희미해져버렸으면 말이다.  

 

2014. 5. 15    K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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